출처: 월간 무협 웹진 [무적]의 명가객잔에 2002년 11월 12일 최병곤님께서 올리신 글입니다.

군협지(群俠誌)에 대한 단상

이 글은 감상문이 아니라 군협지에 관계된 단편들을 필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정리해 본 것이다. 혹시 미진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나온 무협소설 중에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것은 아마 영웅문(英雄門: 김용)일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재간이 이루어진 것은 군협지이다. 기록에 남아 있고 필자가 직접 확인한 것만 대충 따져도 최소한 15번 이상 재간이 이루어졌다.

대부분 아는 사실이겠지만 군협지의 작가는 와룡생(臥龍生)이고 원제은 옥차맹(玉釵盟)이다.
옥차맹은 와룡생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그를 무림의 태두(泰斗)라고 일컫게 만든 대표작이다.
옥차맹이란 제목은 자의소녀 소차차(蕭姹姹)가 서원평(徐元平)의 가짜 무덤에 한옥차(寒玉釵)를 함께 묻으며 맹세를 한데서 따온 것이다.(이것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길어지니만큼 이번 글에서는 이 정도로 줄인다.)
옥차맹은 당시에 대만의 유명한 일간지 중에 하나인 중앙일보(中央日報)에 연재되었는데, 옥차맹이 연재되는 동안 옥차맹증후군(玉釵盟症候群)이라는 신조어가 생성될 정도로 공전절후의 히트를 쳤다. 예를 들어 대만사람들은 대부분 아침식사를 식당에서 간단하게 먹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손에 신문을 들고 옥차맹의 연재를 읽으며 식사를 했으며, 버스정류장에는 사람들의 줄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이유는 황당하게도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류장에 무료로 전시된 중앙일보의 옥차맹 연재물을 읽기 위해서였다니 그 인기가 얼마만큼 높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와 와룡생의 관계는 특별한데 그의 부고를 기사화해 실은 신문이 바로 중앙일보다. 현재 중국무협을 다루고 있는 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바로 잡혀야 할 것은 와룡생의 사망년도이다. 그는 1997년에 죽었는데 거의 모든 무협 사이트들이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999년에 사망했다고 잘못 기록해놓고 있다. 이것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들도 많은데 모두 제대로 바로잡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진에 나오는 옥차맹의 원서는 그 당시의 것은 아니고 79년에 대만의 한린출판사(漢麟出版社, 전4권)에서 나온 것이다.
김일평(金一平)씨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군협지가 책으로 나온 최초의 판본은 민중서관(民衆書舘)에서 발행한 1966년 11월 판이다.(2단 5권, 사진 참조) 그 당시 군협지의 인기는 대만에서와 마찬가지로 말로 형용하기 힘들만큼 엄청났다. 석 달에 한번씩 재판을 찍어낼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이 군협지가 무협소설에 대한 기폭제로 작용하여 수많은 중국무협소설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군협지가 워낙 인기가 있다보니 다음해인 67년에는 천세욱(千世旭)씨가 편역한 비호지(飛虎誌: 불이출판사)가 나왔다. 또한 68년에는 지금까지 무협소설로는 전무후무한 어린이를 위한 소년군협지(전10권: 문정출판사)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영웅문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듯 대단했지만 어린이용으로까지는 나오지 못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짐작해보아도 군협지의 그 당시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비호지는 1단 3권으로 이루어진 판본인데, 김일평씨가 번역한 판본을 보고 줄여서 낸 책이 아니라, 천세욱씨가 따로 번역하여 편집한 책이다.(두 책의 내용과 번역체를 비교해 보면 완전히 다르게 번역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비호지는 편자가 군더더기라고 생각하는 부위를 과감하게 삭제하여 원래 내용을 절반으로 줄인 판본이다. 예를 들어 군협지의 앞 시작 부위에 소림사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를 간단하게 한 줄로 줄여서 썼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전개가 지루하지 않고 굉장히 스피디하다. 필자의 개인 생각이지만 이 판본이 현재에 재간 된다면 10대나 20대도 지루하게 여기지 않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70년 말까지 얼마나 재간이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진에서 보듯이 대호출판문화사에서 77년에 민중서관 판본 그대로 권수만 늘려서 8권으로 재판이 나왔고, 74년 인창서관에서 비호지의 판본을 제목만 바꾸어 정무문(精武門)이라는 이름으로도 재간이 되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정무문의 겉표지에 이소룡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도 그 당시 이소룡의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도 권당 페이지를 줄이고 권수를 늘려 4권으로 나왔다.

그 외에 직접 확인은 하지 못했으나 도서관 목록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67년에 삼신서적에서 군협지가 재간되었고, 70년 서정출판사, 71년 명지사에서 군웅지란 이름으로, 74년에는 오행각, 그리고 81년에 마지막 세로쓰기 판본으로 범양사에서 민중서관 판본 그대로 재간된 적이 있다.
그리고 대본소에서 흰색 소프트 커버로 된 5권짜리 군협지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오래전 일이라 언제 발행된 것인지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 외에도 듣기로는 군소출판사에서 수차례 재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80년대 이후에 서점용으로 맨 먼저 재간된 판본은 86년에 영한문화사에서 나온 군웅지(群雄志)이다. 이 책은 진유성씨가 번역한 것으로 쓰여 있는데 아마 유령인물이 아닌가 싶다. 책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새로 번역한 게 아니라 김일평씨의 번역본을 보고 고전 투의 문구를 고치고 글쓴이 마음대로 몇 가지를 첨삭한 게 엿보인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권수를 맞추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량을 빼먹었다. 비호지처럼 전체 내용을 줄여서 쓴 게 아니라 어느 페이지부터 어느 페이지까지 갑자기 뭉텅 없어져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스토리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92년에 덕성문화사에서 나온 것은 출판사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똑 같다.
(이 판본은 절대 읽지 말 것을 권한다. 참고로 원제가 취수옥환인 충의문도 재간하면서 상당히 많은 분량을 빼먹었다.)

97년에 비전21에서 나온 판본(이영호 역)도 이 책과 내용이 문구하나 다르지 않고 똑 같은데 다만 빠진 부분이 채워져 있을 뿐이다.
영한문화사 다음으로 재간된 판본은 93년 예문각(민병권 역)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 또한 김일평씨의 판본을 보고 글을 조금 다듬은 것에 불과하다. 다만 영한 판이 원문에 큰 손상을 가한 것에 비해 그 정도가 조금 덜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재 바로북에서 판매하고 있는 E-BOOK도 이 판본인데 바로북의 설명을 보면 박우사에서 2000년에 발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헌데 박우사에서 이 책을 발행한 적이 없다는……. -_-;;)

 

 

마지막으로 최근에 재간된 생각의나무에서 나온 판본이 있다.    
생각의나무에서 나온 것은 민중서관에서 나온 김일평씨의 판본을 토씨도 거의 바꾸지 않고 재간한 것이다.(필자가 아는 어느 헌책방 주인장의 정확한 정보에 의하면 얼마 전에 비호와 군협지의 과거 판본을 생각의 나무 관계자가 구해갔다고 한다.)  
읽다보니 민중서관 판본에서 잘못 옮긴 것인지 아니면 편집상의 오류인지 오자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80년대 이후 재간한 군협지 중에서 가장 성의 없이 낸 판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의나무 판본이 가장 정확하다. 바꿔서 말하면 김일평씨가 번역한 민중서관 판이 원전에 가장 충실했다는 이야기다. 원서와 직접 비교해보면 거의 빼먹지 않고, 또한 첨가한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번역한 것이 민중서관 판이다. 그러나 문체가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고어체이기 때문에 현대어로 바꾸어 주는 것이 마땅하나, 그런 성의도 없이, 또한 사람 이름이나 초식 명에 해당하는 한자마저도 거의 생략해버렸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마 무협을 새로 접하는 독자들은 1권을 제대로 읽기도 힘들 것이라는 것은 필자 개인만의 생각일까?

이상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옥차맹을 직접 원본을 보고 번역한 판본은 김일평씨가 번역한 것과 천세욱씨가 편역한 비호지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재간된 판본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으로는 예문각에서 발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 최병곤 empchoy@hanmail.net

ps, 혹시 필자가 언급한 것 이외의 판본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메일이나 무적의 자유게시판을 통해 알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군협지가 우리나라의 무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록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