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호스피스]는 호스피스 간호사인 캐시 칼리나가 쓴 책을 제14대 유타한인회장을 지낸 강은희 씨가 번역하여 지난 2월15일 출판사 [바오로딸]이 출판했다. 아래 글은 책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임종 채비
임종초기의 환자가 호스피스에 입원하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징후조절이다. 그런 다음에 환자와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물론 임종 채비는 이 세상 사람들과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환자가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슬픔으로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를 흩어버림으로써 호스피스 간호사는 환자와 가족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유머가 임종 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선 환자 방에 들어가면서 나는 '오늘 운이 좋으십니다. 제가 담당 간호원이거든요. 제 배를 문질러 보세요. 세 가지 소원을 들어드리지요.' 하고 농담을 한다. 사실 웃음만큼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것도 없지만 자주 또는 오래 사용해서는 안된다.
유대관계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는 만국 공통어, 즉 손을 잡거나 상대방을 어루만지는 것이야말로 환자를 치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환자가 특별히 조심스러워 보이면 팔을 슬쩍 잡거나 손을 꼭 쥐면 된다. 기껏해야 환자가 할 수 있는 건 슬쩍 피하거나 그만두라고 밖에 더하겠는가.
사랑의 긴박감
말기 환자에겐 마음을 먹는 그 순간부터 너그럽고 솔직하게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특히 말기 환자는 오랫동안 병을 앓았기 때문에 자신의 몰골이 사납다고 생각하므로 안아주거나 볼에다 입을 맞추면 큰 용기를 얻는다.
나는 환자와 처음 만날 때면 '오래 편찮으셨어요' 하고 물어본다. 충격적인 사건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간호사가 환자의 여정에 진정으로 동반하기를 원한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징후 조절이 잘되어 나간다면 환자는 자신이 회복되어 간다고 생각할 것이고 가족들도 일시적이나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자신을 방어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환자가 죽음을 부정하면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환자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특히 환자에게 부담스런 진실을 말해줌으로써 좌절시킬 필요는 없다.
인생회고
서서히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환자는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임종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살아오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선별하고 그 의미를 찾아보는 인생 회고이다. 이런 일은 생각날 때 하기 때문에 언제나 잘 들어두어야 한다. 가족들이야 귀가 따갑게 들었겠지만 처음 듣는 조산사라면 보다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병이 급속도로 진전되거나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진단이 나오면 환자나 가족은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마무리를 서둘러야 한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특히 세심한 안내가 필요하다. 호스피스 간호사가 안내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은총의 통로가 되고 싶은가에 달려 있다. 한 조산사는 성탄절 낮에 침대에 누워 있는 의식 없는 환자를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는 거실로 옮기면 어떻겠느냐고 가족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족들이 모두 찬성을 해서 크리스마스 트리 앞으로 침대를 옮겨놓았다.
그런데 얼마 뒤 환자가 깨어난 것이다. 조산사가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있지요, 담배하고 와인 한 잔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하고 말했다. 자녀들이 담배와 와인을 준비한 뒤 침대 머리를 들어올리자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나서 와인도 두어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가족들에게 '이제 때가 되었다.' 하고 나서 그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렇듯 조산사의 영감으로 그 부인은 자녀들과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데는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걸린다.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사진첩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그리고 가족들이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가, 라고 물으면 곧 바로 그렇게 하도록 한다. 가능한 환자가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정리하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