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다녀와서 (2)

이정면 (유타대 지리학 교수)

2. 백두산 등반

연변대학교 초청 업무를 마치고 중국방문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백두산에 오르기로 했다. 백두산(2,744m)은 함경남북도와 중국 동북부(舊만주)와의 국경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장백산맥의 동쪽에 있으며 미국의 Oregon주에 있는 Crater호와 같은 Caldera호인 천지(天池)가 있다. 백두산은 휴화산(休火山)이고 흰빛깔의 경석(輕石) 석회암으로 덮여 있으므로 백두산(白頭山)이라고 부른다. 천지의 물은 서쪽으로 압록강, 동쪽으로 두만강, 동북으로는 송화강(松花江)을 이루고 있다.
청나라의 聖祖(康熙帝)는 백두산을 청나라 발상의 영산(靈山)이라고 하여 조선 숙종3년(1677)에는 청나라의 내대신(內大臣) 覺羅武默訥을 백두산에 보내어 제사를 지내고 지리도 조사하여 숙종38년(1712)에는 국경을 일방적으로 천지 동쪽 아래로 10리쯤되는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이 비석은 높이가 2자이고 넓이가 1자이다. 비문(碑文)에는 한자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국과 조선국경으로 한다고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은 사연으로 백두산은 두 나라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백두산에 오른다는 것은 뜻있고 등반해 볼만한 곳이기도 하다.
백두산에 오른 차량은 대학측의 배려를 사양하고 연변 방송국 이흥국씨가 제공하는 대형 세단차(00777)를 이용키로 했었다. 그리고 운전은 박 천(朴 川) 주임(主任)이 하기로 했다. 박주임은 한국이나 일본 기타 외국에서 온 손님을 도맡아 백두산을 안내한다고 한다. 따라서 박주임은 백두산 등반에 따른 정보에 밝고 특히 백두산 길목마다 어려있는 사연 하나하나 빠짐없이 훤하게 알고 있었다. 백두산 등반은 하루에 가서 천지를 보고 이어 하산하여 장백폭포(67m)를 보고 산록(山麓)에 있는 온천에서 쉬고 다음날 연길시(延吉市)로 돌아오는 것이 있고 또는 아침 일찍이(새벽 4시30분경) 출발하여 낮에 천지와 폭포를 단숨에 보고 당일로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대개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당일로 등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여유 있게 백두산을 찾으려면 1주일 정도가 적당하다고 느꼈다. 특히 이른 아침 좋은 공기를 마시며 차분히 완경사(緩傾斜)로 백두산에 이어진 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음미(吟味)하기 위해서, 특히 천지와 폭포를 구경하고 온천에서 몸을 풀어 휴식하려면 적어도 4~5일 전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등반 일행은 전춘원(全春元) 교수 내외분 그리고 본인과 박주임을 합쳐 4명이었다. 연변대학 호텔에서 기다리다 아침 6시반(7/13)에 출발했다. 도중에 가솔린이다, 무엇이다 하다가 시내를 빠져나간 것이 7시가 넘어서였다. 시내를 뒤로하자 박주임이 몬 차는 줄곧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쾌속(快速)으로 달리기만 했다.
날씨가 맑고 또 도로 양변(兩邊)뿐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녹색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깨끗한 계천(溪川)이 줄곧 흐르고 있었다. 특히 군데군데의 산간 산록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농촌을 멀리 바라보게 되니 백두산 등반길에 일행을 한없이 즐겁게만 해주었다. 도중에 혁명투사 기념비가 서있는 조그마한 마을 부근에서 전교수 사모님이 정성껏 준비한 조반(朝飯)을 하고 등산길이 바쁜지라 곧 차를 몰았다. 그러나 힘차게 달리기만 하던 차가 갑자기 "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도로 밖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박주임이 차를 급정지시키고 차밖으로 나갔다. 차를 살펴 본 그는 앞바퀴 타이어가 펑크가 났으니 타이어를 갈아야겠다고 하면서 차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라고 했다.
차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차주변을 왔다갔다 했었다. 그때 전교수가 "이박사님 이 못을 보세요" 하면서 도로 한복판에 꽂혀있는 큰못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도로 한가운데 큰못이 줄지어 꽂혀져 있었다. 장난치고는 너무나 지나친 장난이라고 아니 볼 수 없었다. 그 주변에 마을도 없고 한데... 박주임 말은 "아이들 장난입니다"하고 말을 맺었다. 박주임은 조선족계 중국인이다. 몸집도 크고 널따란 얼굴에 체격도 좋다. 도로에 큰못이 줄줄이 박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변화, 동요하나 보이지 않고 땀을 흘리면서 타이어만 묵묵히 바꾸고 있었다. 그도 어느새 완전히 대륙적 기질을 가진 중국인이 되었다. 대범하고 담담하기만 했던 그의 모습을 보고 느낀바 많았다.
타이어를 바꾸고 차는 다시 백두산쪽으로 통하는 신작로(新作路)를 달렸다. 차속에서 밖을 바라보니 3대의 차가 군데군데에 멈추어 타이어를 바꾸는데 여념(餘念)이 없었다. 우리 차와 같이 도로에 박힌 못 때문에 펑크가 나서 타이어를 바꾸고 있는 것이었다. 차가 한참 달리다 지도상에 명시(明示)되어 있지 않은 조그마한 고개에 도착했을 때 박주임이 차를 멈추면서 이곳에서 펑크난 타이어를 수선해서 언제 펑크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비 타이어 없이 도로를 달리기가 불안했던 것 같았다.
타이어를 고치려 들어섰던 수선소란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시골 장터에서 볼 수 있었던 헙수룩한 가게(?) 같은 곳에 타이어를 눕혀놓고 큰 쇠망치로 타이어 림을 때려 삐어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타이어가 펑크나서 수선하는 것과는 다르다. 첫째, 타이어 펑크를 수선하기 위한 연장이 없다. 그러나 그들 중국인들은 이것저것을 만지작거리며 타이어를 고쳐주고 20元(약2불)을 받았다. 나는 그때 걱정이 되었다. '과연 저런 타이어가 백두산 등반에 견디어 낼 수 있을까'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동안에 우리 차는 어느 새 백두산에 가까운 신작로를 달리고 있었다. 조선족이 팔고 있는 사철탕의 간판이 차의 Side Mirror에 걸려 나타나고 또 사라져간다. 어디로 가나 보신탕 파는 간판은 흔히 볼 수 있다.
백두산을 찾는다 해서 누구나 다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6월이나 7월중에는 백두산 주변의 일기(日氣)가 순간 순간 변화하기 때문이다. 비, 눈, 안개 등 여러가지 조건으로 백두산 천지 주변이 쉽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등산하기에 앞서, 연변을 찾았던 중국의 주석 Jiang Zemin(江澤民)이 이곳 백두산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첫 번 올라갔을 때 안개로 뒤덮여 천지를 못보고 다시 산록 온천 숙사로 내려가 다음날 재차 올라갔으나 역시 실패하고 하산하여 다음날 세 번째 시도했으나 결국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하고 떠났다고 들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 인민위원회 위원장 Li Peng(李鵬)도 저희들보다 수일앞서 고령을 물리치고 자동차로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근대화의 기수요 중국개방의 선구자였던 Deng Xiaoping(鄧小平)도 1983년 여름에 백두산 천지를 찾았기에 그곳에는 기념비가 서있다.
이와 같이 백두산은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한번은 올라가고 싶어하는 성산(聖山)이요, 영산(靈山)이기도 하다. 백두산 천지를 어김없이 보기 위해서는 계절의 선택이 필요하다. 틀림없이 천지를 볼 수 있는 계절은 여름 8월중순에서 가을의 9월초순 사이이다. 9월말부터 11월말에 접어들면 영하 44도로 내려가 얼음이 얼어붙고 천지표면은 백설로 뒤덮인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겨울의 천지를 설지(雪池)라고도 부른다. 6월부터 7월사이에 백두산 등반하면 천지를 반드시 본다는 보장은 없고 운이 좋아야 보게 된다는 것이다. 6월경만 해도 천지에 어름이 간혹 깔려 있다고 하니 말이다. 하계절(夏季節)의 온도는 20도 정도라고 한다.
필자가 백두산 찾았던 날은 7월13일이었다. 보장(保障)된 8월까지 기달릴 수가 없고 해서 요행을 바라고 등반했던 것이다. 천지를 보고 못보고 간에 백두산 영봉(靈峰)에 발을 댄 것으로 만으로 만족하게 여기기로 마음먹고 담담한 심경(心境)으로 등반했던 것이다. 정상에 차가 다왔을 때 만해도 천지 있는 곳까지 안개가 천지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천지까지 도보로 1백여m 정도 걸어서 올라갔을 때, 천지주변의 안개가 차근차근 개어지고 아름다운 천지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힘좋은 박주임하고 둘만 상봉에 먼저 올랐던 것이다. 우리 둘은 환성을 올렸다-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면서... 이어 카메라로 그 절경을 마음껏 담았다. 이때 박주임이 말했다. "이박사님 저는 오늘까지 32회째 백두산 천지를 찾았으나 이런 날씨는 처음입니다. 이박사님은 부처님을 믿습니까?"하고 감탄했었다.
백두산 천지는 주위가 20km며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317m이고 총면적은 15km2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봉우리마다 백설봉이니, 천문봉, 청석봉, 옥설봉 등으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 천지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하는 천지성인설(天池成因說)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로 부근의 해수(海水)가 침투하여 천지의 수원(水源)이 되었다고 보는 것, 둘째 백두산 주변의 식생분포(植生分布)로 인해서 그것이 수분을 함유하고 증발하여 산상(山上)으로 밀어 올라가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또는 눈이 되어 천지를 이룬다고 보는 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천지바닥에서 물이 솟아오른다는 용수설(湧水說) 등이 있다.
그리고 천지에는 괴수(怪獸)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지수면에서 괴수가 머리를 들고 나타나면서 수영한다는 것, 또는 공룡 같은 것이 천지밖에 나와 앉아 있었다는 등 이야기가 오고가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곰이 더위에 못견뎌 목욕하러 뛰어 들었으나 너무나 물이 차서 뛰어나와 못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한말이 아닌가도 보고 있다. 어쨌든 간에 수온이 동기(冬期)에 영하44도로 내려가는 천지에 어떤 동물이고 간에 살수 없다고 학자들은 믿고 있다.
백두산이 언제 폭발했을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나 흔히 1200년경으로 보고있다. 장백산(백두산)폭발시 화산재가 멀리 일본 북해도(北海道)까지 날아왔다고 일본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폭발시의 퇴적물에 따라 백두산의 중국측은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경치도 좋다. 한편 북한측은 완경사면을 이루고 있으나 경치는 중국측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한민족은 아시아 동북에 우뚝 솟아있는 이 백두산을 발상지(發祥地)로 삼고 이 산 서북의 만주 대륙에서부터 우리 한반도에 걸친 지역을 생활무대 삼아 살면서 색다른 문화와 역사를 간직해 옴으로서 동방문화의 선구자로서 모든 압박과 착취에 견디어 왔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백두산은 언제나 틀림없이 우리 민족과 더불어 존재하는 성산이요 영산인 것이다.
백두산의 아름다움과 장엄한 위용(偉容)을 고이 간직하기 위해서는 백두산 주변일대의 자연과 인문환경의 적절한 관리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보았다.

천지에 가득차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고 있다.

[ 유타 코리아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