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atch 산책 16

소도 넘는 판문점

이봉복 (편집고문)

지난 6월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동생과 아들들을 데리고 남북 분단의 철벽과도 같은 판문점을 통해 소 500마리를 몰고 북으로 들어갔다.
민족상잔의 피와 한이 서린 남과 북의 정치적 교착점인 판문점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실향민들, 아니 어쩌면 6,25를 아는 이면 가슴이 찡함을 아니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의 방북이 성사된 데는 남북한 당국의 정치적이나 경제적 의도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에는 이번의 방북은 너무도 극적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달란트(talent)에 대한 비유의 교훈을 주셨다. 여러 사람에게 씨앗의 신비가 담긴 달란트를 나누어주고는 그것을 가꾸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서 받은 달란트를 현상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몇배씩 늘린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정회장은 북녘땅 강원도 통천에서 살다가 가난과 농사가 싫어서 18세때 아버지가 소 한마리를 팔아 준돈 70원을 가지고 서울로 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83세의 노인이 되어 아버지의 품을 떠난지 65년만에 70원을 가꾼 몫(?)으로 소 1000마리(1차 5백마리)와 옥수수 5만톤(트럭 100대분) 등 모두 137억원어치를 가지고 아버지의 땅으로 갔다.
그는 소를 팔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65년전에 헤어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충남 서산에 바다를 메운 간척지 땅에 서산목장을 만들고 소를 팔아주신 아버지를 늘 생각하며 한우를 길러왔다고 한다.
그는 또 온갖 시련을 이기고 열심히 살아 큰 기업을 이룩해 한국의 기간산업과 복지사업, 문화사업 등으로 국가에 크게 이바지하고 세계적인 재벌신화를 일구어 낸 대 사업가가 되었다.
이번 방북이 그의 탁월한 상술로 극적인 효과를 얻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성경은 구하는 자만이 얻는다고 했다. 자기에게 주어졌던 그의 달란트를 열심히 가꾼 것의 보답이라면 당연히 판문점은 열려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수많은 실향민들이 연도에서 '소도 넘는 판문점, 나는 언제나 고향을 가보나'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아무쪼록 그들의 눈물을 씻겨줄 그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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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atch 산책 17

남겨줄 유산

이봉복 (편집고문)

앞을 생각해보면 누구나 까마득함을 느낀다. 그래서 모든 이들은 늙는 것이나 죽음 같은 것을 아예 생각지도 않고 무관심 속에서 산다. 오리라고는 믿으나 그러나 까마득한 미래로만 팽개치고 산다. 그러나 날마다 보는 거울이지만 어느 날 흰머리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곤 한다. 쓰는둥 마는둥 끼던 돋보기도 이젠 없어서는 안될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다. 허나 반대로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엊그제 같은 일들은 벌써 작년의 일이 되어 버렸다.

지난 해 8월 동양선교교회 어린이들이 학생수련회에 참석차 캘리포니아로 가던 도중 발생한 교통대참사가 우리 교민사회를 크게 놀라게 그리고 슬픔에 잠기게 했었다. 그때에 상희양을 하늘에 보낸지도 벌써 1년이 되었다. 천진스럽고 남자처럼 우직하면서도 가끔 웃기는 짓도 잘하던 상희가 보고싶을 때가 있다. 지난 해 7월25일부터 교회수양회에서 그토록 열심히, 밤을 새우며 기도하던 상희를 보면서 '어른들의 신앙보다 더욱 깊은 믿음을 가졌구나'하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약2주일 후에 하늘에 갈 준비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얼마 전엔 밝은 웃음을 짓고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상희를 꿈에서 보았다.

금년 수양회를 2박3일동안 참석하며 같은 장소 같은 때였기에 상희 생각이 몹시 났다. 그래서 검정 넥타이를 맸다. 이번 수양회에서는 중고등부 학생들과 자정이 넘도록 함께 지냈다. 전에 보지 못한, 학생들의 모임이 참으로 대단했다. 인도하는 집사님들의 수고와 성의도 대단했으나 상희를 잃고 난 후의 큰 결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상희와 친구하던 각 교회 학생들의 모임도 매우 진지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사고당시 중상을 당한 소영양은 아직 완전치는 않으나 밝은 성격이라 믿음생활, 학교생활 잘하고 있으며 석재군은 염려한 것보다는 회복이 빨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수전도단의 일원으로 하와이 단기선교훈련을 마치고 한국,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순방하고 있다. 얼굴에 많은 유리 자국으로 상처를 입은 예영양는 엊그제서야 1차 성형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에 있으며 스테이시양도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도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있다.

이제 4반세기의 역사를 앞둔 우리 한인사회의 역사 속에 청소년을 위한 뜻깊은 일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하고 각 교회에만 의존하여 온 우리 한인사회가 좀 부끄러운 면도 없지 않다. 말도, 문화도 잊혀져 가는 그들에게 남겨줄 유산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더 늙기 전에 그리고 그들도 늙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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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atch 산책 18

故이영자 사모님을 추모하며

이봉복 (편집고문)

몇 해전 일본에서는 급증하는 노인들의 복지문제로 대책에 부심 했었는데 그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 사람은 공무원 또는 대기업에서 정년 퇴직한 당사자들이었다고 한다. 고위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중역들로 50대 후반에서 퇴직한 당사자들이 기관이나 기업에 말단 한직인 경비원이나 수위직으로 재취업을 하여 급증한 노인문제 해결에 상당한 공헌을 하여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존경과 격려를 받았다는 얘기다. 이것은 단순한 노인문제해결이 아니라 국가나 기업의 경영에 막대한 흑자와 손실을 막는 결과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경영에 큰 이정표를 세워놓은 것이 아닌가하여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50대! 흔히들 인생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또 인생의 황금기라고도 하여 여행도 하고 맘껏 즐겨야 한다고도 한다. 더 늙기 전에 노세노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기사 뒤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죽어라고 일하고 애낳고 다 키워 놓고 집 장만하고 사람도 많이 사귀어놓고 이것저것 두루두루 다 거쳐보고 별로 부러울 것도 없이 명성도 좀 있는 것 같고 이정도면 황금기라고 하는데 그 아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겠으나 그러나 인생에 시작이라는 말에도 깊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시작! 엘리트라고 자부도 해봤고 청렴결백과 원리원칙에서 죽고산다고 자부도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며 실수 없는 업무를 위해 동료 모르게 밤을 지새우고 선배를 따라다니며 물심부름을 하며 겸손하게 인생을 배우고 하던 그 시작이라면 정말 멋있는 인생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황금기만 생각하고 거들먹거리는 교만한 50대는 잘못하면 꼴불견 황금이 되고 만다. 소위 말하는 창피스러움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체면도 양심도 모두 접어놓고 나의 일이 뭣인지 남의 일이 무엇인지 분간도 없이 낄데 안낄데 다끼고 할말 못할말 다 지껄여대고 인생을 이렇게 시작한다면 이 인생은 그야말로 [파토] 인생이다.
60이 되도 철이 안나는 사람은 그렇다하고 칠십대가 넘어도 한결같이 인생의 시작처럼 늘 겸손하게 살아가시는 어른들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다는 것은 우리 이민생활의 큰 행복이다.
한인사회를 젊게 하여 경비직이나 수위직으로 재취업해 존경받는 우리 사회가 절실히 요청될 때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시어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신 故이영자 사모님을 잊을 수가 없다. 70을 2년 앞두시고 세상을 떠나시기 바로 전까지도 우리 젊은이들을 대해 주실 때에 자세한번 흐트신 적이 없고 또 자상함과 다정다감함 속에서는 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신 그 사모님이셨다. 남편인 이정면 박사님에 대하여는 학자부인으로서의 내조는 물론 박사님의 건강관리에 대해서는 엄할 정도로 철저하셨다. 가정과 사회를 통해 분별있는 인생 길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9월2일로 사모님의 1주기를 맞으며 귀한 인생을 가르쳐주신 사모님을 진심으로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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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atch 산책 19

멸종 위기

이봉복 (편집고문)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살고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이름을 붙인 전세계의 동식물은 약1백40만종이 된다고 한다. 이들 중 하루평균 136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리 한반도에서 만도 매년 250~300여종의 동식물이 멸종되고 있다.

멸종원인을 과학자들은 서식지파괴, 남획, 외래종의 영향, 먹이부족, 농작물보호를 위한 포획, 이상기온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보신문화로 인한 남획이 야생동식물의 생존을 절대적으로 위협한다는 것이다. 오소리, 구렁이, 자라, 남생이 등은 정력과 몸에 좋다는 이유로 멸종위기에 있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땅꾼들이 도서지방까지 진출하여 구렁이를 잡기 위해 야산전체에 높이 60cm 가량의 뱀그물을 치고 뱀을 싹쓸이한다고 한다.

또한 야생식물의 멸종 또한 인간의 남획이 주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오리엔탈마켓에 보면 별별 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모든 것이 상혼에 이끌려 외국시장에까지 팔려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야생 동식물의 멸종은 언젠가 인간의 멸종을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같은 나라는 자연보호나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아주 오래 전부터 많은 예산을 들여 철저하게 공을 들여 오고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있다.
이러한 나라에 살면서 우리들도 과거를 아끼고 전통을 보전하며 좋은 관습과 예의 등은 멸종시키지 말고 살다가 후세에 넘기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많이 커졌다고는 하나 실제로 뚜렷하게 인구가 늘은 것도 없고 못 보던 얼굴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살던 이들이 그만큼 빠져나갔기도 하다.

하지만 교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관은 훨씬 늘은 셈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작 한인회만이 교민사회의 유일한 기관이었다. 이제는 상공회의소, 여성후원회, 세탁협회 등이 우리 한인사회에 등장했다. 한인회만이 존재할 때 회장단이 화분을 들고 각 업소를 방문하고 환자를 위문하고 어려운 가정을 방문하고 주소록이 나오면 한 권이라도 더 널리 전하려고 교민은 물론 타주 한인회에까지도 발송을 하고 이사들이나 광고 스폰서들에게는 가정으로 우송하는 예의도 지켰었다. 새 주소록이 8월에 나왔다는데 아직도 구경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광고주들은 돈만 내는 봉인가?

한인회장이나 단체장은 우리 한인사회만을 생각하고 임기를 마쳐야지 교민사회는 둘러보지도 않고 영사관이나 찾아가고 명함이나 찍어서 한국이나 돌며 얼굴이나 보이려고 하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초창기 회장들은 인격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졌으면서 한인사회를 위해 김치통, 잡채그릇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길러온 우리 사회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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