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 韓人의 발자취를 다시 찾아서

이정면 한인이민사 편찬위원장

작년에 유타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주정부는 유타주에 살고 있는 아세아인의 역사(Asian History in Utah)를 출판하기로 했다. 그때 필자도 제한된 지면을 할당받아 유타 한인이민사를 써서 유타 한인이민사 편찬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하여 마감날인 1996년 1월23일 주정부에 제출했다. (아직 출판되지 않음).

필자가 언제나 안고 있던 집념 - 유타주에 처음으로 온 한국인은 누구이며 언제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1995년 여름, 유타에 있는 Kennecutt 동광산에 고용되었던 31,629명의 광부(세계의 40개국에서 왔음)중에 400여명의 한국인 광부가 취업하고 있었다는 기록에 대하여 확인한 바 있다. 그들은 거의가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일하고 있었으나 그 이전 즉 1800년대에는 한사람도 없었다.

Wyoming주 Kemmerer의 South Lincoln묘지에 묻혀 있는 한국출신 광부 B.M. Shin씨도 1920년 7월26일에 묻혔고, 유타주 Ogden묘지에 묻혀있는 Chang, S.C.씨의 장례는 1911년 1월4일로 되어있다.

따라서 유타주 정부에 제출했던 이민사에서는 유타주에 한국인이 발을 댄 것은 1900년대 초반이라고 우선 적어 두었으나 1800년대 후반에도 틀림없이 한국인이 와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은 분명히 제기해 두었다.

1882년 한국과 미국사이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이듬해 8월에는 전권특명대사 閔泳翊 일행 11명이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의 첫 왕래라고 할 수 있다. 이후 甲申政變(1884)으로 인한 망명객, 유학생, 그리고 인삼관계 상인들이 미국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수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좀 더 많은 동포가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것은 1902년 Hawaii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동양계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한국은 전국에 걸친 흉년 때문에 국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궁핍해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정부에서는 宮內府 내에 이민사무를 전담하는 綏民院을 두고 閔泳煥이 총재가 되어 정식으로 수민원에서 이민 희망자에게 Visa를 발행하여 이민선에 태워 Hawaii로 이민을 보냈던 것이다.

1902년 12월22일에 처음으로 공식 이민 121명이 인천항을 떠나서 이듬해인 1903년 1월13일에 Hawaii Honolulu에 도착했다. 이 첫 출발을 기점으로 이민은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1903년에는 16차례, 1904년에는 33차례, 1905년에는 7월 초순까지 16차례 이렇게 해서 총 7,226명의 한민족이 Hawaii로 이민을 갔었다. 그리고 1905년 3월6일에는 1,031명을 싣고 인천항을 떠나 Mexico로 이민을 했다. 이민선을 타고 고국을 떠나 갈 때는 낯선 이국 땅이지만 생활을 개척한다는 부푼 꿈이 그들의 가슴에 찬연히 살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그리던 Hawaii가 아니고 억새같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채찍으로 강요당하는 하루 10여 시간의 노동이었고 그에 따르는 것은 생활을 꾸려나가기 힘들 정도의 저임금뿐이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순종을 미덕으로 살아온 韓民族이었기에 인간이하의 대우에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오로지 조국의 수난으로 감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그들의 일부는 조국으로 돌아갔고 그 중의 일부는 미국본토 상항과 나성 등으로 상륙하여 새로운 삶의 꿈을 찾았던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초지일관 그대로 Hawaii의 사탕수수 농장에 남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본토에 상륙했던 사람 중에는 새 일터가 별로 신통치 않아서 다시 그곳에서 Arizona, Utah, Nevada, 그리고 Idaho 등지의 미국 중서부 산간지방의 광산지대나 농장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틈을 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있는 여러나라분들과 만나 자료를 구하는데 신경을 써 왔다. 즉 "1800년대 후반에도 한국인이 유타주에 살고 있었다"라는 가설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실, 사례를 밝히는데 전력을 다해왔다.

기록에 의하면 Salt Lake City에 있는 Salt Lake Cemetery는 1847년부터 사망자가 묻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장된 사람의 명단을 찾아보면 어떤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心證을 갖게 되었다.

묘지에 묻힌 한국인들의 장례일자가 이곳 유타에 도착했다는 날짜를 말해주지 못하고 언제 이곳에 왔는가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묻힌 날짜만으로도 한국사람이 이곳 유타에 언제 왔는가에 대한 숙제를 푸는 실마리에 대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지난 5월23일 오전에 Salt City 묘지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작년에 주정부에 제출하는 이민사 원고 때문에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때 도움을 주었던 Ms. B. Height는 병으로 휴가 중이었다. 그래서 묘지 관리소장인 Mr. Paul Byron씨를 만났다. 둘이 마주 앉아 유타 한인이민사 편찬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당신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참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Paul은 내 무릎을 탁 치며 "Dr. Lee, you are lucky."라고 하면서 "실은 어제 1847년부터 현재까지 이곳 묘지에 묻힌 사람들의 명단을 전부 Computer에 입력했오. 그래서 원대장을 대출해서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6월9일에 오시오. 그때까지 대장 전부 7권을 준비하여 모조리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초면인대도 불구하고 인상과는 달리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과연 필자가 가지고 있는 심증 그대로 1800년대 후반에 묻힌 한국인이 그 대장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 실려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의 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곳 유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하고 출퇴근 길, 그리고 Office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상상해 보았다.

마침내 약속의 6월9일이 다가와 8일에 묘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넣었다. 여비서 Carolyn Fleming이 받았다. 대장 대출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내일 오전10시까지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Carolyn은 선생님이 바라는 내용의 정보는 Southern Utah지방의 광산지대 주변에 있는 묘지관리소를 찾으면 도움이 되는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속대로 비내리는 아침에 Office를 찾았다. Paul과 Carolyn을 만나 사망자매장명단 대장 대출에 따른 정식 公文을 전해주고 대장 7권을 받아 그대로 대학도서관 연구실로 직행했다.

대장은 알파벳트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묘지 (묻힌 곳, 생년월일, 사망일자, 장례일자, 출신지·출신국) 그리고 관리사무소들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으며 정말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는 기록대장이었다. 대장 매수 2,161장에 사망자수가 총 103,925명에 달하고 각 대장에는 보통 12,000~16,000명의 사망자가 기재되어 있었다.

알파벳트 순으로 페이지 수를 좇아 며칠동안 찾았으나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인의 이름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매장자 10여만명 중에 불과 몇 명밖에는 없다니 .....필자의 심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에 반하여 일본인, 중국인의 사망자는 그 수도 많고 나름대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10여만명 중에(1910~20년) 한국 혹은 조선(Korea)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곳은 한곳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한국인(Korea)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공언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이야기가 되겠다.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희랍인, 독일인 그리고 이태리인들의 명단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그 대장에는 생년월일, 장례일자 그리고 출신지(국가)가 명시되어 있다. 심지어 중국인의 경우 중국 본토로 이장해 갔다는 사항까지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성명의 발음으로 보아 분명히 한국인이라고 짐작되는 사람의 위와 같은 내용의 기록을 보면 대개 거의가 모두 생년월일도 없고 출신국도 불명으로 되어 있었으며 오로지 장례일자만 나와있다. 그렇다면 중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면 틀림없이 한국인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발음이 Lee, Sun Bum(이순범), Park, A.S. 등으로 되어 있다.

물론 Park, A.S.의 경우 서양사람(백인)중에도 Park이란 성이 있다. 그러나 생년월일, 사망일자 그리고 출신지가 없을 경우 그것은 분명히 한국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1900년대 초반에 매장되었다고 하면 Kennecutt 동광산에 1910~1920년 사이에 집중 고용되었던 사실과 연관 지어 볼 때 1895년 9월14일에 Lee, Goon이 그리고 1896년 2월24일에 Salt Lake에 묻혔던 Park, A.S.는 틀림없이 한국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1900년대 초반 그리고 1800년대 후반 대부분의 이민자가 조국에 가족을 두고 단신 이민해 왔다가 죽었다면 누가 그 당시 죽어 가는 순간에 출신지를 밝힐 겨를이 있었을까, 외롭게 병들어 죽어 가는 길밖에.....

또 하나의 조사상의 애로는 중국인 이름과 한국인 사이의 혼돈이다. 그러나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는 발음상의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한자로 기재되어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대부분 영자로 적혀져 있고 first name, middle name은 거의 전부 줄여서 A.S., D.K., B.S. 등으로 되어있고 성만 Lee, Kim, Shin, Park 등으로 나와 있으니 어려움이 더욱 많았다. 10만명이 넘는 사망자 명단에서 한국인이라고 심증을 얻은 몇 사람만을 다음과 같이 뽑아본다. 현지를 가보면 비석하나 없고 지도상에 나타나 있을 뿐이다.

상기 Salt Lake City 묘지 명단에서 찾아낸 사람들 전부가 한국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90%까지는 틀림없이 한국인이라는 심증을 얻게 된다. 한 걸음 더 양보해서 80% 혹은 70%의 신빙성밖에는 없다 할지라도 앞에서 열거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인일 것이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 초반 사이에 이와 같은 한국인들이 거의 떳떳하게 "Korea"란 나라를 등지고 이민을 올만한 나라 사정이 못되었고 또 1910년의 한일합병을 전후한 나라사정의 어지러움으로 인한 나라 없는 설음, 죽어서 묻혀도 소속 없는 자로서 산 설고 낯 설은 이국 땅에서 눈을 감고 묻히게 된 그들의 심정을 생각할 때 가슴이 무너지려 한다.

이번 조사에서 지난날에 쓴 글에서 내렸던 가설 "1800년대 후반에도 한국인이 유타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이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앞에서 열거한 사람중에서 1895년 그리고 1896년에 묻히고 또 1905년 그리고 1911년에 묻힌 사람이 있으니 1900년대 초반뿐만 아니라 1800년대 후반에도 이곳 유타에 발자취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타주 각지방의 광산지대에 있는 묘지와 농장 등을 찾아볼 때 이러한 사실이 더욱 명백히 나타나리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한국인은 언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이곳에 왔었을까...

1902년의 Hawaii이민 혹은 1905년의 Mexico 이민으로 와서 그 일부가 상항, 나성 등을 거쳐 이곳 유타 또는 중서부 산간지방의 광산을 찾았던 것은 거의가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 같다. 1906년에 시작한 Kennecutt 동광산에서 일했던 한국인 광부들의 고용카드에는 영어를 약간 한다, 또는 그 나름대로의 의사가 통한다는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한국인으로서 정식으로 이민온 사람들로 Hawaii 혹은 상항 또는 나성을 거쳐 온 것은 그들의 영어실력 등이 그 이동과정을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Salt Lake City 묘지에 1895년에 묻힌 사람들은 한국에서 정식 이민해온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보다는 빨리 온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 한국민족이 쇄국의 쇠사슬을 풀고 공개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860년 이후의 일이다. 조국의 政情이 어지러워지자 한국인은 일찍이 조국을 뒤로하고 이민 아닌 유민으로 중국 동북부 (약200만명), 러시아의 연해주(약40만명) 그리고 일본(약200만명) 등으로 떠났던 것이다.

중국의 東北部地方(구만주)으로 빠진 일부는 중국본토의 上海, 南京 등을 거쳐 중국인의 이민과 휩쓸려 이곳 미국에 온 것은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이곳 Salt Lake City 묘지에 중국인은 1875년부터 묻히기 시작했으며 중국인의 유타 진출은 1860년대 철도공사 당시 이미 12,000 이상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Salt Lake City 묘지에 묻힌 한국인의 年代問題(1895년, 1896년)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쨌든 유타주 그리고 중서부 산간지방에 남긴 한국인의 발자취를 찾는다는 것은 기록이 거의 없고 조사범위가 넓기 때문에 매우 곤란한 실정이다. 그러나 필자의 가설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신빙성과 설득력이 있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한국인 이민에 따른 지방전설, 구전, 비화 그리고 史實 등을 찾아 모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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